얼마 전, 20세기 소년 17권이 발매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동네 도서대여점에 들렀다.
역시나 대여 중.
예약을 할까 하다가 책방아주머니가 겉으로는 상냥한 척 하지만, 예약을 해도 다른 사람이 먼저 빌리러 오면 다른 사람에게 대여해 버리곤 한다는 것을 알기때문에 며칠 동안 예약좀 부탁한다고 왔다갔다 하느니 그냥 다른데서 구해보자 싶어서 다운을 받았다.
주인없을때 아르바이트 생이 이야기 하는 것을 얼핏들었는데, 아주머니가 아르바이트생들 쪼아대는게 장난 아니라는 소문이다. 물론 일,이백원 장사라지만 책 들어오면 연락 좀 해달라니까 그건 해줄 수가 없다고 하고, 아주머니 입장에서야 얼마남는다고 연락까지 하겠느냐는 당연한 논리인지 모르지만 세심한 배려가 아쉽다. 내가 그 집에서 빌려간 게 얼만데.
그 집에 아르바이트 생이 한달을 못 넘기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듯.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만화책을 다운받아 보면서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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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전 도서대여점이 만화업계를 망치고 있으며 만화책을 빌려보는 행위는 창작욕구를 저해하는 범죄행위라고 대대적으로 공세를 펴왔다. 한때 만화책 맨 뒷페이지를 펴면 도서대여점에 있는 만화책에 병균이 얼마나 있으며 어린이들 건강에 직접적인 피해를 둘 수 있다는 글도 실려있곤 했다.
당시 유력했던 논리 중 하나는 비디오테이프 대여와의 비교였는데 비디오는 영화관이라는 1차 판매를 거친 영화라는 미디어를 비디오라는 매체로 대여를 하기 위해 발매되는 것이며 판매를 주 목적으로 하는 만화책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비디오 한 편의 가격과 만화책 한 권의 가격을 비교하며 왜 만화책을 대여해서는 안되는 지에 대한 상세한 서술이 덧붙여져 있었다.
시간이 흘러 예전에 비해 좋아하는 만화책은 사서 본다는 인식이 확장된 것 같기는 하다. 현재 사지는 않지만 한때는 나도 좋아하는 만화책은 사기도 했고.
도서대여점이 만화업계에 미치는 악영향이 얼마나 큰지는 알 수 없지만 만화책에 대한 수익구조 인식을 바꾸어 비디오처럼 도서대여점에 판매하는 식의 수익구조로 세울 수는 없는 것일까?
아무리해도 수익이 맞지 않는 것인가?
생각해보자.
만화책은 대여해서 보면 안되는 것인가?
좋아하는 만화책은 사서보라고?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범죄라고?
그래 정말 좋아하는 책이고 필요한 만화책이라면 사 줄 용의가 있다.
방이 좁아 둘데는 없다만 만화책 한 질 들어간 공간 안나오겠는가.
만화책을 제외한 다른 책들을 생각해보자.
현재 나는 극히 일부의 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도서관에서 빌려본다.
수 많은 책들이 내게 필요한지도 의심스럽고 나중에 다시 펴볼지도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요즘 읽어대는 그 많은 책 어디 다 살 수나 있겠으며 다 사서 쌓아둘 곳이나 있겠는가?
근 2년간 필요해서 산 책만으로도 -물론 교재를 포함해서 - 책장 하나를 거의 다 채울 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볼 책을 모두 사서보라는 것은 경제적으로든 효용면에서든 어불성설이다.
대개 만화책도 책이므로 라는 논리를 펴는데, 그래 만화책도 똑같은 책인데 만화책을 사서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않은가?
인생에 스쳐지나갈 수많은 만화책을 전부사라고?
아니면 좋아하는 만화책은 구입하라고?
좋아하는 만화책을 사서보라는 논리를 펴려면,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냥 보는 만화책에 대해서는 어찌할 것인가. 어쩔 수 없이 도서대여점과의 공존의 논리를 펴야하지 않은가? 어찌 만화책을 제목만 보고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를 논할 수 있는지. 서점에 가면 만화책은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도록 하나하나 비닐로 포장해 두었으면서. 대여점에서 보고 좋다는 생각이 들면 사게되는 것이 옳지 아니한가.
동네마다 도서관이 존재하고 학교마다 도서관이 존재하는데 그건 지적재산권 운운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도서관은 공공재이고 도서대여점은 사익에 기반하기 때문인가? 만화도서관이 동네마다 학교마다 존재해 빌려준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악의 축이던 도서대여점마저 스캔본에 밀려 위기를 겪고있다.
내가 바라던 '만화책 소개의 장'이 대여점에서 컴퓨터로 넘어온 세상이다.
물론 소개의 장의 역할은 주간지가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한국에 발매되는 모든 만화가 주간지에 연재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부분은 어찌할 것인가.
대여점 대신 컴퓨터가 만화책을 볼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저렴한 수단이 된 세상.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일시적으로 보고 반납하는 대여점의 책과는 달리 스캔본은 저장할 수 있고 소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만화책을 보기위해 서점이나 대여점으로 달려가는 대신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몇 번 두드리고 마우스만 몇 번 클릭하면 가능하게 되었다. 아울러 자신이 삭제하지 않는 이상 그 자료는 영원히 자신의 소유다. 요즘 HDD가격도 내렸고 CD나 DVD의 가격도 내려 저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만화책을 소장하는데 새로운 방법이 생겼고 그건 훨씬 저렴하다. 자 이제 어쩔 것인가!
만화책 스캔본이라는 것이 위에 '내가 바라는 대여점의 역할만'을 수행한다면 긍정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변하여 악의 축 도서대여점이 위기를 겪고 있다. 하지만 만화 산업은 더 큰 위기속에서 어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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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게 살자 다짐해도 싫은 사람이 싫은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인가보다.
나의 경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내가 싫은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저 하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뿐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런걸 보고 파장이 맞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겠지만...
부덕의 소치다 부덕의 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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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가 끝났다.
막판에 시험 세 개가 하루에 몰리는 바람에 한 과목을 포기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그다지 나쁘지 않은 학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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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
이틀밤을새고 전공시험을 두 개 본 후, 수업을 두시간 듣고 난 상태로 다녀오다.
한 십분 잔 듯.
좌석은 초대권 A석 박스열이었다.
괜찮은 공연이었다. 클래식 공연이란 의례 괜찮은 느낌을 받게되기는 하지만...
하기야 초대권이라도 있었으니 갔지 40,000원 다 내라면 어디 가겠나.
프로그램 - 예술의 전당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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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
D 장조미사
소프라노 최찬진
알토 문혜경
테너 곽윤협
베이스 최승혁
떼 데움
소프라노 신지화
베이스 신상진
앙콜곡:"Symphony No.9 (From the new world)"
출 연 :
# 출 연 자 : Sop. 최찬진 Alt. 문혜경 Ten. 곽윤섭
Bass 최승혁(D장조미사) / 신상진(떼 데움)
# 합 창 : 서울오라토리오 합창단 (130명)
# 반 주 : 서울오라토리오 오케스트라 (75명)
# 후 원 :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주)나라감정평가법인, 서울오라토리오후원회
가 격 : R:80,000 / S:60,000 / A:40,000 / B:25,000 / C:15,000
(초등학생이상 입장가)
장 소 : 콘서트홀
장 르 : 음악회
주 최 : 서울오라토리오, 주한체코대사관
전화 번호 : 02-587-9277
협 찬 : SK텔레콤, 삼성생명, 한국수력원자력(주), 한국석유공사, (주)다우썸, (주)온바다, 듀오, (주)그린야드, SOLEX planning, Prime Display System
기 타 : 8세이상(초등학생 이상) 입장가능(특별히 언급이 없는 공연일 경우) /
공연장내 화환반입은 금지합니다.
The 100th anniversary of A. Dvorak`s Death - Seoul Oratorio Regular Concert
Program : Missa, D Major Op.86
Te Deum, Op.103
Symphony No.9 (From the new world)
Period : 2004 / 12 / 14 (Tue) - 2004 / 12 / 14 (Tue)
Time : 8:00 pm
Ticket Price : R:80,000 / S:60,000 / A:40,000 / B:25,000 / C:15,000
Venue/Hall : Concert Hall
Genre : Concert
Presented by : Seoul Oratorio
More Info.(Tel.) : 02-587-9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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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에 시험 두개와 수업.
금요일에 시험 세 개.
최고의 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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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 달리 요즘은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쉬이 말을 놓지 못한다.
나이가 몇 살이고 나이 차가 몇 년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항상 초면에는 당연히 존대.
말을 놓게 될 경우는 상대방이 말을 놓으라 계속 권고하는 경우,
아니면 말을 놓아도 되겠느냐는 양해를 구한 후.
말을 놓아도 되겠느냐고 묻느니 존대를 해버리는 것이 편해서 그냥 누구에게나 존대말을 하는 편.
사석이든 공석이든, 사석에서는 좀더 쉽게 말을 놓지만...
여기까지는 내가 말을 놓게 되는 경우, 그러니까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해당되는 경우다.
내게 말을 놓는 문제는 그 사람이 몇 살인가에 따라 좀 다르지만...
지난 봄 알게 된 사람 L.
세 살이 많다.
학교에 늦게 입학해 나이가 많지만 학번으로는 나보다 후배가 되어버린 사람이다,
그는 내가 말씀 놓으시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한 후헤야 말을 놓기 시작했다.
역시 지난 봄에 알게된 사람 K.
두 살이 많다.
어느정도 공석의 성격을 띄는 곳인지라 여전히 나는 그 안의 사람들에게 존대를 한다.
어느 날 보니그 사람은 은근슬쩍 자신보다 어린 모두에게 말을 놓고 있더라.
붙임성이 좋아서인지는 모르겠다만...
적어도 아무에게나 함부로 말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것 정도는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닌지 궁금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붙임성이 좋은 것인지.
조건으로보면 K쪽이 더 낫다.
재산이나 외모 문제가 아니라 사고의 깊이나 이런저런 모습들은 K가 상당히 높을지 모른다.
존대의 경우만 아니라면 분명 K쪽이 더 호감을 주는 스타일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이상한 것이 작은 것에 감동하고 작은 것에 분노한다.
그래, 아직 내가 성숙치 못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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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술자리에서 나온 이야기
대성이 형은 한결이가 태어나자 가훈을 정했다고 한다.
어렸을때부터 가훈을 써오라는 숙제가 나올때마다 난감했던 자신의 경험의 반추였다.
형이 정한 가훈은 위에 나오는 시구인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치 마라.'였다.
그 말을 들은 우리는 모두 공감했으나 한가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한결이가 커서 가훈 숙제를 받아오는 날까지 한결이가 연탄을 실제로 볼 일이 있을까?
한결이는 자기 아빠가 자신을 위해 정한 가훈에 담긴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을까?
오늘 담배꽁초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담배꽁초 함부로 버리지 마라
그는
너 만을 위해 타오르지 않았더냐.
한결이 - 14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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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인물 혹은 위인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를 처음 맞닥뜨린 것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이 아닌가 싶다. 그때는 무어라 대답했는지, 다른 아이들은 뭐라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세종대왕, 이순신, 유관순 등이 존경하는 인물의 대세를 이루던 시절이었던 만큼 세종대왕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나서는 잊고 지냈다.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이 누군가를 생각하며 지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 버린 거다.
고교시절, 아무런 이유 없이 그저 세상이라면 분노하던 그 시기에는 세상에 존경할만한 사람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여겼던 것 같다. 적어도 생존해 있는 사람들 중에는…… 다만 한국식의 위인전 스토리-어렸을 때부터 비범한 재능을 보이며 시작하는-에 치를 떨었던 것만 기억날 뿐
시간이 흘러, 요즘은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묻는 사람은 없지만, 만약 누군가 물어온다면 대답할 준비를 하고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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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라는 청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신앙을 가져본 일이 없고, 모든 종교에 대해서 같은 입장을 취해야 하며 그 중 어느 것도 더 사랑하거나 덜 사랑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입장을 현재 종교에 대한 지론으로 내세우고 있지만,(물론, 인간이 아닌 다른 것을 최고로 치는-이를 테면 교주 일 인-사이비는 빼도록 하자.) 그렇다 하더라도 예수라는 청년만은 존중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특정 종교에서 표현하는 미화되고 신격화 된 예수의 허상이 아니며 전적으로 예수라는 한 청년에 기인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 태어나 일생 동안 가장 낮은 곳에 거하였으며 가장 숭고한 영혼을 지녔던 인물. 나는 예수라는 사람을 그렇게 바라본다. 그가 부귀영화를 노렸다면 그렇게 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래서 ‘일신의 부귀와 영화를 버리고’ 라는 평은 붙일 수 없을지 모르나 확실한 것은 일신의 안락함을 버리고 항상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지냈던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 ‘이렇게 살아라.’ 혹은 ‘저렇게 살아라.’고 가르쳐왔고 또 지금도 가르치지만 예수처럼 사람이 살아가야 할 길을 쉽게 가르쳐 준 사람이 또 있을까. 네 이웃을 에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네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말이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일이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 예수는 이를 단순하지만 어려운 일을 몸소 보여 주었다.
오늘도 거대한 성전 안에 큰 어른들은 어린 양을 인도한다는 하늘이 내린 숭고한 사명을 띈채 예수의 이름을 드높인다며 ‘믿습니까?’라고 소리 높여 외치지만 예수가 한 번이라도 그렇게 외쳤던 적이 있던가. 그저, 네 주변에 가장 못한 자에게 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께 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예수가 기독교를 전파했던가? 후대에 야욕을 가진 자가 있어 예수를 빌어와 하느님의 아들이라 감투를 씌우고 억지로 높은 곳에 앉히고 숭상하며 박물관의 박제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만 아무 관계도 없는 내가 공연히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예수가 전파한 것이 기독교였는지, 기독교가 예수의 이름을 빌어왔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알 수 없는 일이다. ‘하느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십자가에 못 박히어’가 교회 안에서 갖는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래도 Marx가 Marxist가 아니라고 토로했듯, 예수도 크리스찬은 아니었던 것 같다.
‘높은 곳을 향해 주’를 찬양하고 ‘왕의 왕 되신 예수. 다스리시는 예수.’를 목청껏 부르며, ‘마귀들과 싸우’면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워진다던가? 길가는 사람 붙잡고 성경공부를 같이 하자 강요하고, 교회에 출입하기를 강요하면 하느님의 나라가 온다던가? 대로변에 서서 오가는 사람 길을 막고 확성기 틀고 피켓들고 설치는 자에게 구원은 어디쯤 있으려는지.
교회의 예수‘님’은 언제나 먼 곳, 저 꼭대기에 계시지만, 일단 삶으로 돌아와 주의를 둘러보면 예수와 예수의 가르침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 같다. 자신보다 풍요롭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돌보는 사람들의 손길로, 예전에 일본에서 돌아가신 姑 이수현씨의 모습으로 예수는 언제나 내 곁에서 나를 일깨운다.
p.s. 얼마 전, 지하철역에서 교회 다니기를 권고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분은 스스로 자신이 진리의 길을 걷고 있다 말했다. 놀랍지 않은가? 교황도 자신의 길이 옳은 길인지 끝없이 자문하리라 생각하는 이 세상에 자신의 길은 진리의 길이고 조금도 그릇됨이 없다고 당당히 말씀할 수 있다니. 그 분의 예수의 재림이라 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예수에 대한 내 입장을 말하자, 그 사람은 내가 너무 교만해서 그렇다 말했다. 이유를 물으니 자신의 말은 조금도 듣지 않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 했다. 만약 자신이 교만했다면 내 말 같은 건 듣지 않고 가버렸을 거라면서, 자신은 너그럽기 때문에 내 말을 들어주고 있는 것이라는 논리였다. 누가 누구의 말을 들어준다고? 애초에 내가 그 사람을 말을 들어주며 시작했고 내내 그렇지 않았는가? 길가는 사람 붙잡고 내가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주절거리는 것을 참고 들어주며 그에 대한 내 입장을 말하는 것이 교만인가? 내 입장에서는 상대방의 말을 조금도 듣고 있지 않은 것은 상대방이었다. 그 분은 선교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적은 있는 것 일까? 아무나 교회에 끌어오면 선교인 것인지. 그건 돼지를 끌어와서 우리에 처 넣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결국 그 분은 내가 말하는 도중에 말을 끊고 다음에 얘기하자며 가버렸다. 분명 교만한 사람은 나였는지 모른다. 그 분이 보기에 나는 사탄에 홀린 교만의 극치였을지 모르나 나는 그 사람에게서 자신이 믿는 것만을 옳다 믿으며 타인의 의견을 조금도 수용치 못하는 극도의 자기중심적 사고를 보았다.
p.s. 특정 종교를 비방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습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리듯 언제나 물을 흐리는 것은 몇몇뿐이지요. 이 사회에 예수의 길을 따르는 진정한 크리스찬이 얼마나 계시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물을 흐리는 것이 극소수이기를 바랍니다.
p.s. 내 주위에서 내가 높이 사는 크리스찬들은 아무도 나에게 교회 다니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제기하는 이런 문제들도 겸허히 잘 받아준다. 20년 동안 교회에 다녔다는 한 친구는 이제 교회에 나가지 않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훌륭한 크리스천이다.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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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라고 뭐 특별한게 있는 것도 아니고, 연말에 술값만 비싸져서 좋아하지도 않지만...
6월쯤 이었으면 어땠으려나. 연말하고 가까우니 세상이 더 놀자판인 것 같다.
교인들도 아니면서. 물론 한국에 제대로 된 크리스찬이 얼마나 될지도 미지수이지만...
매년 크리스마스가 가까우면 생각나는 건데 아기예수는 어디가고 산타클로스뿐이다.
내 생일인데 왜 산타클로스만 인기인거냐며 권투로 한 판 뜨던 사우스 파크의 예수님의 모습,
크리스마스에 사람들은 놀러가고 혼자 케이크에 불 붙이고 Happy Birthday to Me를 부르던 사우스파크 다른 편에서의 예수의 모습과,
말구유에서 태어나는 아기 예수,
그리고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있던 청년예수의 모습이 겹쳐지며,
날로 가까워 오는 크리스마스는 보는 이의 기분을 슬프게 한다.
이건 덤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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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1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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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오는 구만.
ㄱ. 성탄절.
ㄴ. 성스러움과 거룩함은 사라지고, 상업주의의 가벼운 예수와 십자가의 이미지만 남은 성탄절.
ㄷ. 가난한 자들에게 복이 있을?.
던킨 도넛을 절대 사먹는 일이 없고 원래 단 것 좋아하지 않지만 주변 사람들이 하도 시끄럽게 떠들길래 뭔가 한 번 찾아 보았다.
18일에 망년회를 하자니까 크리스피 크림 도넛 개장식에 갔다와야 한다고 하시더구만.
일본에서 한정판 게임 기다리는 일부 극성 게이머를 보는 듯 하다. 그렇게 맛있는 걸까?
일단 궁금하면 시도해봐야 하는 성격이므로 개장하면 한 번 먹어보기는 해야겠다.
美 "크리스피 크림’ 던킨 도너츠에 도전장
more..
또 하나의 도넛 브랜드가 상륙했다. 미국의 도넛 브랜드 ‘크리스피 크림’이 롯데쇼핑과 손잡고 ‘던킨도너츠’가 독점하고 있는 한국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크리스피 크림 도넛’(사진)은 롯데쇼핑과 프랜차이즈 사업 계약을 맺고 12월 초 서울 신촌에 1호점을 연다고 9일 밝혔다. 크리스피 크림은 한국을 아시아 공략의 첫 지점으로 삼았으며 5년 내 직영점을 25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니컬러스 포케이드 국제마케팅 매니저는 “한국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크다고 판단해 아시아 국가 중 한국에 가장 먼저 진출하게 됐다”며 “유통 및 외식사업의 지식이 풍부한 롯데쇼핑을 파트너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크리스피 크림은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전 세계 400여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도넛 브랜드이다. 매장 안에 기계를 설치하고 따뜻한 도넛을 서비스하는 게 특징이며 하루 평균 75만개,1년에 27억개의 도넛을 생산한다. ‘오리지널 글레이즈드’를 비롯한 15종의 도넛과 커피가 주 메뉴이다. 미국에서는 던킨도너츠만큼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마니아층을 형성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크리스피 크림이 국내에서 성공하려면 값비싼 로열티를 해외로 유출한다는 비난과 ‘웰빙 열풍’이라는 만만찮은 장벽을 뚫어야 한다. 롯데쇼핑이 미국 본사에 지불해야 하는 로열티는 매출액의 1∼6%. 이 브랜드를 수입하기 위해 롯데쇼핑은 2년간 공을 들였다. 현재 국내 도넛시장의 규모는 연간 500억원,이 중 던킨도너츠가 80∼90%를 점유하고 있다.
/최진숙 joplin@sport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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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3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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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에 회계학(Financial Accounting)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기말고사와는 별도로 회사 2곳을 제비뽑기로 정하고 기본적인 재무제표를 활용해서
재정상태를 각각 비교분석하고 내년 전망을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