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EA라는 이름에서 알았어야 했다.
비닐로 봉해놓고 견본을 내놓지 않는 자세에서 그만 두었어야 했다.
표지 하단부에 'KINO 수고했다. 이제부턴 우리가 맡는다'
라는 말의 근거없는 자신감에서 쓰레기임을 알았어야 했다.
혹시나하는 마음이라는 거 말야.
우선 한 가지,
내 방에는 작년 7월호를 끝으로 폐간된 얼터너티브 영화잡지 KINO가 80여권쯤 쌓여있다.
14시 30분 교내서점에 들렀다.
서점 바깥에 붙어있는 포스터
평론중심의 영화전문 월간지 COREA 창간
미심쩍다.
영화잡지 이름이 COREA라고?
지금까지 이런 식의 이름을 내거는 영화전문지는 없었는데?
넘어가기로 했다.
비닐에 싸여있다.
'저기요 이거 혹시 견본은 없나요?'
'예. 그 책은 견본이 없어요.'
다시 한 번 미심쩍다.
견본 한 부 내놓지 않는 처사가 다소 기분이 나쁘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어쩄든 나를 방금 전까지 알지도 못했던 잡지에 손이 가게 했던 건 단 두 가지
평론 중심의 영화전문 월간지
표지에 쓰여있는 KINO라는 네 글자.
뒤는 우리가 맡으마.
사실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해놓고 제대로 하는 놈 없는 법이다.
하지만 이제 창간된 잡지에 전성기의 KINO의 기사를 기대하는 건 무리인 법.
창간부터 당분간은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시간이 지나면, 내가 몇 권 사고, 나 같은 놈들이 몇 권 사 주면 글도 나아질 거야.
그럼 나는 새로운 KINO를 만나게 되고 창간호부터 차근차근 읽으며 울고 웃고 KINO처럼 자금난에 허덕이면 가슴 아파하고 (그럴 가능성은 안 보이지만) 잘 된다고 하면 기뻐 할 수 있겠지 라고 잠시 생각했다.
결국 샀다.
거금 6000원 투자.
공대 사무실 수강 편람을 하나 챙기고 도서관에서 다음학기 시간표를 잠시 고민하고 책의 비닐을 뜯었다.
두근두근하는 마음에 첫 페이지를 펴고 차례를 찾고 차례를 대충 보았다.
‘흐음 그렇군’
다음에 펼친 축하인사라는 것. 출판사나 잡지사가 책을 출간했을때나 100호 특집 같은 것을 내었을때 (아! 100호 KINO가 이뤄내지 못했던 마지막 한권이여!) 출판사 사장하고 친하다거나 옆집에 산다거나 아니면 이런저런 지긋지긋한 인연으로 한 마디쯤 쓰게 되는 그런 글.
이름이 나오고 직책이 나오고 대개
'축하해염. 더욱 발전하셈. 오백호 천호 내셈. 그 때도 내가 님 책에 축하글 써 드리겠심'
정도의 내용을 정치적으로 올바른 단어로 조합한 글이 적혀있는 겉치레가 있는 자리.
자, 만약 당신이 영화잡지를 내었다면 창립축하인사의 글을 누구에게 부탁하겠는가?
대개 이런 식으로 고르지 않을까 싶다.
일단 유명 영화 감독과 배우. (영화 산업의 눈에 보이는 역군)
자본주의 사회니까 배급사 사장님. (가능한 일이지)
평론 중심의 영화전문잡지를 표방했으니까 유명 평론가. (평론 중심이라며?)
인정 받는 독립영화감독. (뭔가 있어 보이잖아.)
아직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앞으로 유망해 보이는 감독(아! 이 사람은 5호 쯤에 인터뷰 형식으로 싣는 것이 좋겠군요. 아니면 유망한 신인 감독 시리즈를 기획하거나. 인정 못 받은 감독 취소.)
그 잡지는 축하인사부터 수상했다.
열명 전후의 축사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범민족 어쩌구 통일 무슨 연합
민족 통일 무슨 어쩌구 연대
한반도가 이러쿵 저러쿵
백기완씨 이름이 보이긴 했는데 그 사람 축하인사가 제일 짧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사실 난 백기완씨 이름만 아는 수준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그 사람에 대해 왈가왈부 할 자격은 없다.
10여 개의 단체에서 축하인사인데 통일 이 안 들어가는 곳은 한 군데인가 두 군데뿐이었다.
그 곳은 바로 민주노동당. Yeah!
화가 났다.
조금 더 넘겨 몇 장 대충대충 훑었다.
이남의 영화가 어쩌구 저쩌구.
이남이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잠시 궁금했다.
설마 이 이남이 그 이남은 아닐거라 생각했다.
여기 이 이남은 그 이남이었다.
찢고 싶었다.
참았다.
환불 받고 싶었지만 이 정도에서 끝낸다면 참을 수 있었다.
다음부터 안 사면 되지.
왜 그 책의 하필 그 부분의 그 기사의 끄트머리가 눈에 들어왔는지는 모르겠다.
말 그대로 책을 넘기고 있었고 그림조차 눈여겨보지 않는 식이었으니까.
하지만 운명이란 그런것일까?
신경에 거슬리는 이름이 눈꼬리에 걸렸다.
황혜로
무슨 기사에 끄트머리에 붙었으니 그 사람이 이 글을 쓰셨겠지.
황혜로씨 연세대학교 96학번으로써 방북 후 남한에 들어오자마자 투옥.
일학년 무렵 그 사람 돕기 일일호프나 서명운동 따위가 **련 주축으로 있었던 것이 기억저편에서 밀려왔다.
‘이 사람 요즘 이런 일하며 사는 군. 아직 **련 통일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만.’
싶었다.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넘어갔다.
다음 기사의 필자는 누굴까. 싶었다. 어쨌든 아는 이름이었으니까. 다음기사 필자 황혜로
어이 없었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그 여자가 기사를 두 개나? 그 것도 전혀 다른 분야에서?
헛웃음을 지으며 그 다음 기사의 끄트머리 필자의 이름을 찾았다. 황혜로.
아니. 이 잡지는 황혜로의 세상보기냐?
앞으로 넘겨 이전 기사들의 필자를 확인하고 싶었다.
도대체 몇 명이서 이 책을 만들어 냈는지 이 손으로 기자이름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한 사람이 몇 개나 써 제꼈는지 궁금했다.
차마 할 수 없었다. 황혜로 3연타는 (비록 그 사람의 개인적인 면은 잘 모르지만) 이 책에 더 이상 손을 대고 싶지 않도록 하기에 충분했고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은 이것이었다.
‘종이 질 좋은 6000원짜리 월간 **련 찌라시’
화가 났다. 참을 수 없었다. 조용히 아주 조용히 끝내고 싶었다.
대충 살펴 본 책을 들고 펴 보지도 않은 별책부록을 들고 교내서점으로 갔다.
계산대에서 이야기했다. 골자만 적자면
‘잡지 환불돼요?’
‘안돼요.’
‘제가 이 잡지 견본이 없어 속아 샀거든요. 전 어떻게든 이 부분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겠는데요.’
‘그렇다면 출판사에 연락해 보시지요.’
‘예, 알겠습니다. 전화가 어디 있지요?’
교내서점 구석에 사무실에서 총판으로 총판에서 출판사로 전화를 했다.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건 이쯤에서 감이 왔다.
자아 나는 지금껏 환불 받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모두 환불 받았던 도전자.
하지만 오늘의 상대는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불패의 애국대오다.
불패의 한 길 달려온 자랑찬 백만 청년의 기수이며
청년의 눈빛이 민족의 등불이라 외치는 그들.
그들의 팔목에는 애국의 피가 꿈틀대며
(양어치 건달의 피가 흐르는 나와는 다르지)
자주민주통일 전선으로 깃발 드높이 드시는 분들.
그 강철 같은 주먹으로 애국을 움켜쥐어 백만이 일제히 치켜뻗으면
(그 분들 세력이 백만이나 되나 보다. 큰일이다 한 사람이 한 대씩만 와서 때려도 백만 대가 아닌가? 난 모 유명건전지가 아닌지라 백만 스물 한 대쯤 맞을 자신은 없다..)
승리의 노래소리는 반도산천을 뒤흔든다는 바로 그분들이 아닌가.
얼치기 건달과 불패의 애국대오. 애초에 승부는 결정되어 있었다.
따르릉
예 **대학교 구내서점인데요. 고객분이 책문제로 여쭤보실게 있다고 하셔서요.’
내게 수화기가 넘어왔고 난 위에 말한 논리를 들며 책을 이런 식으로 판매한 행위는 KINO의 이름을 등에 업은 사기성 행위라는 논리를 폈다. 분명 나는 통화가 길어지며 점점 공손하지 않은 태도를 취했음을 인정한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애초에 오만방자 어디 감히 대학생 찌끄레기 한 마리가 불패의 애국대오에게 였겠으나
그들은 멋졌다.
1. 비닐을 왜 포장했는지 이야기를 해주마. 우리는 책을 처음 만들었고 비닐포장은 별책부록의 유실을 염려해 총판 측에서 권유했다. 2호부터는 별책부록이 없고 책을 포장하지도 않을 거다. (물론 그러시겠지. 나처럼 속아서 산 사람들이 다음 달에 다시 이 책을 살리는 없으니까.) 우리 중 누구도 책을 만들어본 경험이 없었고 우리는 그러려니 했다. 그래서 그렇게 했을 뿐이다. 아울러 우리는 책을 내며 견본을 깔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들이 책을 한 권이라도 사 보았다면 비닐포장으로 꽁꽁 막아놓고 견본조차 제공하지 않는 행태가 얼마나 소비자를 기만하는 것인지는 잘 알았으리라 생각한다. 잡지도 견본을 제공하며 견본조차 제공하지 않는 책은 대개 만화책이다. 아울러 책과 별책부록(소책자의 형태)을 같이 둘 필요도 없다. 소책자의 형태인 별책부록을 잡지에 끼워둘 필요가 있는가? 실제로 일부 서점에서는 별책부록을 따로 데스크에 비치해 두고 구입해 가는 사람에게 하나씩 꺼내 준다.)
2. KINO의 이름을 판 것이 아니다. KINO는 작가주의 예술을 지향했고 우리는 그들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조하지 않으며 우리가 동조하는 것은 그들이 국내 유일의 예술영화 잡지였다는 것이다. 네가 기사를 차근차근 읽어보면 알겠으나 상당히 KINO에 대해 예의 바르게 썼다. 이 부분은 전에 KINO에 계시던 분께도 보여 드렸고 그 분도 OK하셨다. (하지만, 내가 KINO의 전 편집장들 이름을 들며 어떤 분인지 물었을 때 그들은 ‘그건 밝힐 수 없다.’고 대답했다. 아울러 그럼 그들이 KINO의 무엇을 존중했고 무엇을 계승했고 이제부터 무엇을 맡을 것인지는 여전히 이해가가지 않는다.)
3. 너는 우리가 우리 책을 마치 KINO를 사랑하던 영화 매니아들을 홀랑 속여먹기 위해 비닐포장을 했다고 여기는 모양인데 우리 그렇게 돈 밝히는 사람들 아니다.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연세대학교 무슨 통일행사에서는 저렴하게 판매하기도 했고 책이 나오는데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무료로 돌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책의 정치적 성향으로 봤을 때 통일행사에서의 할인을 예로 든 것은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 행동이었고, 책을 내고 주변에 감사한 사람들에게 돌리지 않는 필자는 세상에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전에 출판사에서 아주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을 비춰볼 때 책이 나오면 일단 저자가 일정량 사가거나 증정으로 간다. 주변에 돌려야 하기 때문에.)
4. ‘그래서 니가 원하는 게 뭐냐?’
‘나는 이런 책에 내 돈을 쏟아 부을 수 없다. 환불을 요한다.’
‘너 아까부터 말하는 거 들어보니 말하는 태도가 상당히 불량하다. 요구내용도 불순하고. 우리가 환불해 줄 근거를 법적으로 대라. 못 대지? 게다가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거야. 넌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니? (상당히 깔보며 인간적으로 깎아 내리는 말투) 어쨌든 넌 우리 책을 니 돈을 들여 샀잖아? 그런 주제에 책 을 들먹이며 환불을 요구하면 안 되지. (사실 나와 저 쪽이 둘 다 억지스러웠다. 내 논리에서 가장 약한 부분은 내가 책을 샀음에도 그 내용을 들며 환불을 요한 점이었다. 나는 그 부분을 그들의 견본조차 내놓지 않는 행태를 들어 뒤가 구리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견본이 있으면 그 책은 **련의 월간 계몽지였고 겉만 보면 영화잡지였으니까. 사실 속도 얼핏 보면 영화 잡지이다. 그러나 나는 그 책의 창간인사에서, 이남의 영화 – 그래 이남의 영화였다. 나는 순간 이남이라는 내가 모르는 단어가 있을지 모른다는 순진환 상상을 했다. - 가 어쩌구 하는 말투에서, 영화와도 음악과도 관계없던 걸로 기억하는 사람이 연속해서 세 개의 기사를 쓰고 그걸 그대로 싣는 그들의 행태에서, 마지막으로 그들의 저변에 깔린 사상에 소름이 돋았다.)
5. 어쨌든 난 바쁘다. 너 상대할 시간 없다. 이만 끊으마. 뚝.
어이가 없었다. 다시 전화를 걸었고 다른 사람이 받았다.
6. 니가 이쪽 구조를 몰라서 그런다. 우린 총판과 계약을 했고 책을 총판에 넘김으로써 우리 책임은 끝이다. 모든 건 그 쪽에서 알아서 하는 거다. (아까는 분명 자기들 중에 아무도 책을 내본 경험이 없다고 이야기 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경험이 쌓였다는 말인가? 짧은 기간이지만 나도 출판사에서 일했다고 이야기 했다. 그 다음 말이 가관이었다.)
7. 아아 그러세요. 일 잘 못 하셨네요. (이게 사회의 진보를 생각한다고 소리 높이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법한 소리인지 아직도 알지 못하겠다. 그리고 내가 일했던 곳은 일당 3만5천원의 비 정규직이고 회사는 작았지만 그 쪽 분야에서 30여 년의 경험을 가진 회사였고 그 분야의 출판사 중에는 가장 큰 회사였다. 전문서적 위주였으므로 저자는 대개 어느 학교 교수인 그런 책들. 그들은 자기 입으로 분명 책 만드는 일이 처음이라 했다. 알 수 없으나 그 분들이 그러시니 나는 분명 일을 잘 못한 머저리다.)
8. 비닐에 뜯은걸 다시 얘기 하자. ‘넌 견본을 요구 한적은 있냐’ ‘아까도 말했지만 분명히 있고 서점에서는 그건 안 뜯기로 되어있다고 답했다.’ 여기서 그들의 억지논리 및 자기 주장 관철시키기, 상대말 깔아뭉개기, 남의 말 안 듣고 중간에 자르고 자기 말만 하고 뭐라 반박하려 해도 멈추지 않기 등의 진수가 선보이기 시작했다. 서점에서 견본을 요구할 때 확실히 했어야 했고 사장이 자기 출판사 측에 연락을 해서 출판사측에서 견본을 제공해도 된다고 승인하면 견본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 세상에! 교내서점 사장을 보신 일이나 있으신지? 한국사회가 사장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출판사에 전화하고 책 하나 비닐 뜯고 어쩌고의 이야기나 하는 사회인가? 그들의 논리, 무슨 소리인지 잘 알 수 없었으나 결론은 우리는 환불 못 해주겠으니 서점 사장하고 이야기 하고 총판하고 이야기 하고 서점 주인하고 우리측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전화 상으로 자리를 만들고 그래도 납득할 수 없을 경우 만나자는 이야기였다. 그러마고 알았다고 끊으려 했다. 그 순간 그의 질문 너 학교가 어디라구? **대학교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다. 과는? **과다. 학번은? 짜증이 났다. 왜 묻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가 말햇다. 아니 당당히 비판을 하실거면 자신의 이름 정도는 어쩌구 저쩌구. (그렇다 동의한다. 아무리 막 되먹은 사람이라도 비판하려면 자신의 이름을 걸어야지. 그 것이 내가 가진 평소생각이다.) **학번이다. 당당히 말했고 뒤틀린 내 성격은 한마디 덧붙이게 만들었다. ‘아아 이 일로 제게 어떤 불이익이 오지나 않을지 걱정스럽네요. 이를테면 린치라거나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제가 성격이 더러워서 여기저기 싸움 걸어둔 게 많아서 종종 맞고 다니거든요. 그 쪽도 그런 분들이 아니셨으면 싶네요. (물론 거짓말이지만 안 할 수 없었다.) 그건 당신이 지금까지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동이다. 지금까지 이야기는 뭐가 되느냐. 어쩌구 저쩌구 저쪽에서 말을했고 나는 정중한 태도로 사과했다. 하지만 아직도 궁금하다. 그들은 왜 전화를 끊을 무렵에서야 내 인적 사항이 갑자기 궁금해졌을까? 통화 중에 수화기 너머로 들리던 비웃음 섞인 웃음소리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그들의 책에 그리도 당당하고 비닐은 그래서 쌌으며 세 기사를 연속해서 쓴 황모라는 사람은 올라운드 플레이어인가?
이 글을 쓰느라 그 책을 검색해 보았다. 발행처는 21세기 코리아 연구소라는 곳인 듯 했다. 새 글 안내란에는 이런 제목이 눈에 띄었다. ‘황혜로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후보가…’
동명이인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분은 진정 이 시대와 한국이 낳은 천재가 아닌가! 혹 아리스토텔레스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환생은 아닌가? 정치에 영화평론에 음악평론에. 부럽다. 진정 부럽다. 난 하나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계시며 아마 다른 일도 엄청나게 수행하고 계심에 분명하다. 존경스럽다. 이 천재 여성투사에게 앞날의 영광있으라.
전화를 끊었고 한 남자가 다가왔다. 사정은 모르나 대충 들어 알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학교서점의 주임이라 했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으며 그 책에 대한 가격 6000원을 환불해 주었다. 그는 양복을 입지 않았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예의 바른 신사였고 나도 그의 앞에서는 양아치 건달이 아닌 지성인이었다.
혹 그가 주구장창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으며 출판사와 싸우는 나에게 질려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전화 끄트머리의 ‘예. 그러면 여기 사장님과 이야기 나눠보죠.’ 라는 말에서 이 지긋지긋하게 생긴 놈의 목표물이 자신이 되었음을 감지하고 이놈과 소득없는 전쟁을 하며 스트레스 쌓이느니 그까짓 돈 몇 푼 쥐어줘서 내보내자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슬프다. 나는 오늘 금전적 손해는 입지 않았으나 그보다 큰 업을 쌓았다.
한총련을 다시 한 번 싫어하게 되었고 NL계열 전체를 증오하게 되었으며, 썩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나마 나은 사람들로 보고 그들에게 보내던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 역시 접었다.